남신의주 유봉 박시봉방 -백석-
일제 시대였을 거다. 지식인들이라 다 그랬겠지만 북녘땅 어느 곳을 헤메이다가 들어선 곳. 가족도 집도 멀리 떨어져 한 없이 쓸쓸한 겨울, 눈 보라 치는 날, 같은 아주 쓸쓸한 날. 남신의주 유동에 사는 박시봉이라는 목수의 셋방에 앉아, 그저 손 만이라도 따뜻한 온기 줄 수 있는 조그만 화로 앞에서 이런, 저런, 생각들, 기억들이 떠 오르는 것일게다. 그 기억들이란... 가슴이 꽉 메어 오는 슬픔도 있을 것이고, 눈물이 핑 고일 만한 슬픔도 있을 것이고, 스스로 화끈 낮이 붉도록 부끄러운 슬픔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눈보라 치는 시린 겨울, 습하고 어두운 방안에서 슬프고 어리석은 기억에 짓눌린 시인은 그대로 쓰러져 울지 않았나 보다. 그냥 조그만 화로의 따뜻한 재 위에 이런 저런 글씨를 쓰며 곧고 정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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