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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신영복 선생의 부고를 접하며...

신영복 선생이 죽었다

젊은 날 2교대 공장 새벽 일터에서 까만밤, 내 머리속을 하얗게 만들었던 책

한 줄, 한 중, 한 단어, 한 단어, 곱씹어 가며 읽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아마 내 가치관의 대부분이 형성되던 그때, 

읽으며 감동하며 그렇게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했었었다.

그래서 그렇게 존경하게되었던 분,


한참을 절망만 해도 모자란 나락으로 떨어져서도

실천, 긍정, 따스한 마음, 겸손 등을 혼자가 아닌 항상 세상을 향해 사람을 향해 

다가가며 곱씹으며 다지며

책을 읽다 교도소에 나도 가고 싶다 생각들게 하던


교도소에서 배운다던 서예를

내가 배우고 싶은 취미 중 최고로 놓고 기어이 요즘 배우고 있다는


그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셨단다.


일에 가정에 세상에 쫏기다

인터넷 한 귀퉁이에서 그 부고를 보던 날


내일은 올들어 가장 춥단다.

생각 나는 귀 절 하나 올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름징역살이 -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 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 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판단되지 못하고 말초 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혐오에 있읍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 도처에서 발견 됩니다.
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 인성을 탓하여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알고 있읍니다.
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 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 머지않아 조석의 추량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 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듯한 가슴'을 깨닫게 해 줄 것임을 알고 있읍니다. 그리고 추수처럼 정갈하고 냉철한 인식을 일깨워줄 것임을 또한 알고 있읍니다. 
다사했던 귀휴 1주일의 일들도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아마 한 장의 명함판 사진으로 정리되리라 믿습니다.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읍니다. 
친정부모님과 동생들께도 안부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