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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자화상


자화상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나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外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를 닮었다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형(天痴)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시(詩)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서정주, 화사집을 다시 꺼내 들었다. 한국문학에서 이 이름만큼이나 배암의 대가리 같은 이름이 있을까...

차갑고, 살갖에 다으면 치 떨리도록 움츠려 들게 하는, 몽환의 비늘,



화사(花蛇) / 서정주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잃은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무러뜯어.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麝香) 방초(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석유(石油) 먹은 듯……石油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 슴여라! 배암.


우리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 슴여라! 배암.






첫 시집이 이정도였다니 절로 감탄이 나온다.

관능적이면서 관능적인 그냥 관능의 몸짓이 온 문장을 휘감고 있는데

창세기와 김동인과 김영랑과 모든게 녹아있다.

친일만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 어느 정도까지 올라갔었을까 가늠하기 어려울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