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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바깥은 여름을 읽고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다음 이야기




눈 앞에 얼룩진 문장위로 지용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살려주세요....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우리 생각은 잠시도 안 했을 그 순간에 아직 화가 나 있었다.
내 생각은 안 났을까...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게 아니었을까...
허물이 덮였다 벗어졌다.
참으려고 했는데 굵은 눈물방울이 편지지 위로 두둑 떨어졌다.
도무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벌거벗은 내 온 몸위로 두두둑 퍼져 나갔다. 
당신이 보고 싶었다. 
식탁 모서리를 잡고 있다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이제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새어 나왔다. 얼굴에 눈물이 진물처럼 고여 나왔다.


청소를 시작했다.
넓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볕을 받은 집은 사람이 없었던 티를 우울하게 내고 있었다. 이래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청소부터 해보자, 그리고 차라도 한잔 마셔 보는거야. 일도 시작해야돼. 없는 살림에 박봉으로 살았던 통장엔 여행 아닌 해외여행과 장례식과 그간의 생활비로 텅 비어 있었다.


침대보를 들어 창 밖으로 털었다. 분명 빛을 반사하는 종류는 아닐텐데 떨어져 나온 먼지 들은 따뜻해지기 시작한 가을 오전의 햇볕을 받아 반짝이며 이리 저리 휘날리고 있었다. 베게를 털어도 방석을 털어도 널려있던 옷을 털어도 반짝거리는 먼지들이 하늘로 땅으로 멀리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먼지통을 비우고 필터를 털고 스위치를 올린 진공청소기는 우람한 소리로 구석구석 쌓인 먼지며 머리카락이며 떨어진 살비듬들을 빨아들였고 깨끗이 빤 걸레로 닦는 바닥과 유리창틀과 책장과 장농들은 다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 
청소를 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튠즈를 실행시켜 아이유의 노래를 실행시키고 커피를 들고 창가에 앉았다.
따듯한 햇볕이 나른하게 만들었다. 커피 향이 좋았고 아이유의 목소리가 감미로웠다.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부팅을 하고 시작화면이 떴다. 하얗게 웃고 있는 내 옆에 도경이가 파랗게 웃고 있었다. 눈물이 진물처럼 고였다. 한동안 모니터를 보다가 엎드려 버렸다. 아무리 눈을 감아도 눈물이 또 새어 나왔다. 그래 울고 싶을땐 울면 돼
그래도 이제 눈물은 오랜시간 나오지는 않았다. 눈물을 닦고 다시 컴퓨터를 보고 인터넷에 들어가 구직란에 들어갔다. 신입이 아닌 경력직 잡을 구하기는 불가능 보다는 쉬웠다. 창간된지 오래는 아니지만 판매부수는 안정적인 중견 잡지사는 나의 이력서를 선택한 후 출근을 허락했다. 
새로운 회사에 다니는 것은 여러모로 긴장된다. 출퇴근 하는 시간도 방법도 사람관계도 막 시작한 일도 낯선분위기로 기분 나쁘지 않게 내 온 몸의 신경을 곤두 세운다. 그렇게 눈치를 보며 정신없이 배우며 일하고 있으면 어느새 어둑해지기 일쑤인 바쁜 시간이 지나게 된다.


새로온 경력직에게 새로운 프로젝트가 맡겨졌다. 
‘인공지능 시대의 여성의 역할’
AI를 모르면 조금은 올드한 느낌이 나는 요즘세상에서 그래도 올드한 내가 맡기엔 좀 부담스런 주제였으나 어쨌거나 일에 몰입할수 있다는 건 지금 내겐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일이다. 그간 시리도 많이 친해졌고....


침대의 베게가 하나가 되고 밥그릇이나 찾잔도 하나가 되고 방석도 하나, 책상도 의자도 스탠드도 하나가 되고 꿈에서 만난 도경이는 아직도 아침 눈물이 새어나오게 하지만 그 횟수가 드문드문 될쯤 김치를 다시 담아보기로 결심을 했다.

오래전 친정 엄마가 알려준 방법이 빼곡이 적힌 수첩을 찾아 찬장을 뒤졌다. 
오래된 기억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의자를 놓고 윗 찬장까지 뒤지는데 오래된 편지며 영수증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내려와 하나하나 집어 정리를 하는데 분홍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권도경선생님 사모님께 라는 한줄을 가진 편지.
한참을 그렇게 분홍색 봉투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지낼까’
궁금했지만 어떠한 단서도 없는 편지 봉투는 다시 찬장위로 다른 봉투와 함께 올려졌다.
열무단을 다듬고 소금에 저렸다. 건고추와 마늘을 갈고 양파를 갈고 배를 갈고 파를 다듬어 썰고 부추를 썰고 갓을 다듬어 썰고 고추가루며 설탕이며 미원이며를 준비했다. 넓은 빨간 고무다라를 부엌에 가져왔다.
‘밥은 잘 먹고 있을까, 마비가 심했던거 같은데’
숨이 죽은 열무를 넣고 준비된 양념과 야채들을 넣고 고추가루와 젖갈을 넣고 열심히 뒤척이니 파랗던 열무잎 사이로 빨간 김치색이 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성취감 같은게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열무잎 하나를 띁어 양념을 뭍혀 맛을 보니 예상보다 맛도 좋았다. 
‘맛있어? 성공했네’ 
도경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눈물이 샛지만 이젠 농담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럼 누구 솜씬데…”



오래전 일이라 최근 통화를 한참을 밑으로 쓸어내렷다. 지금이 초겨울이니 벌써 3개월전 일이었다.
이름도 저장이 안 되어 있어 힘들게 몇번을 찾은 결과 전화번호 하나를 찾아냈다. 이름은 없고 번호만 있는 낯선 번로,

칸을 손으로 눌렀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는 받지 않았다. 다시 번호를 눌렀다. 이번에도 였다. 다시 눌렀다. 
“여보세요’
앳된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안녕하세요,”

”....”

”저 권도경 선생님 아내예요”
“네”
놀라지 않는걸 보니 내 전화번호는 지용이 누나, 지은의 핸드폰은 내 이름으로 되어있었나 보다.

"잘지내요?"

"네 사모님은요?"

"저도 잘 지내요"

사무적인 대화가 오고가며 잠시 통화를 한 후 끊었다. 오래된 사람마냥 조금 대화가 이어지니 편했다. 지은이도 그렇게 생각되었으려나.

김치통을 꺼내 작은 김치통으로 옮겨 담고 뚜껑을 덮고 보자기로 쌓다. 

당신이 잡았던 손을 나도 이제 잡으러 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요양원 중환자실의 손잡이는 차가웠다. 둥그런 모양은 손에 딱 맞았지만 금속의 차가운 기운은 한번 더 문 열기를 망설이게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는 그 차가운 물속에서 남편이 잡은 지용이의 손도 이렇게 차가웠을까. 이런 생각은 문을 열수 있는 용기를 조금은 키워줬다.
끼이이이익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창 옆 침대에 누워있던 지용이 누나는 눈 크게 뜨고 놀라게 보고 있엇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김치를 좀 담가왔어요. 지은씨 생각이 나서요. 
지은이가 잡은 왼손 위 숟가락엔 입고 있는 환자복 만큼이나 하얀 밥이 김을 내고 있었다. 
식사중이었네요... 잘 됐네..
수줍은 미소가 지은이의 얼굴로 퍼졌고 우린 한참을 바라보다 드문드문 얘기하다 그렇게 하얀 병실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