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떠났다.
수원역에서 무궁화를 타고 구례구역에 도착하니 오후 4시, 부랴부랴 저녁을 먹고 성삼재에 도착하니 5시가 넘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산장 까지는 한 3~4 km 남짓. 허나 계속되는 오르막에 무엇보다도 처음 걷기 시작하는 나에게는 항상 가장 힘든 코스이다.
노고단 산장으로 가는 오르막길
하지만, ㅋㅋ, 이미 많은 산행으로 단련된 몸이기에 예전만큼은 힘이 들지가 않고 노고단 산장에 도착하였다.
노고단 산장에 도착한 처음 느낌은 무지 단정해 졌다는 것이다. 예전에 왔을때는 공간이란 공간은 모두 텐트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제 텐트는 사용을 할 수 가 없고 산장에서만 잠을 자야 된다고 한다.
산장도 아담하니 깔끔하다.
설레임 때문일까 밤새 뒤척이며 잠을 잘 수가 없어 거의 뜬눈으로 침낭안에 있었다. 주위에서 나는 말소리에 시계를 보니 4시다. 사람들은 지금부터 산행을 시작하려나 보다. 나도 일어나 짐정리 하고 라면에 김밥 먹고 출발한다.
산들 또한 밤새 덮고 있던 안개이불을 걷어내며 잠을 깨고 있었다. 장관이다.
피아골을 지나 임걸령에 도착했다. 그 전날 물을 뜨러 가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던 우리가 떠올랐다. ㅋㅋ
힘들게 걸어와 물을 뜨려니 한 500m쯤 내려가야 된다. 그런데 내려가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그 500m를 다시 올라와야 되니 그게 싫어 전부가 서로 미루었었다. ㅋㅋ
삼도봉에서 한 컷. 내 옆으로 보니는 삼각뿔 모양의 물체는 경상남도와 전라남, 북도, 이렇게 삼도의 경계가 이 봉우리란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세 개의 면으로 되어 있고 각 면에 삼도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곳이 화개재이다. 이 높은 곳까지 사람들은 물건을 이고 와서 장을 세웠다 한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등산의 고수 들이 아닐까?
연하천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노고단에서 시작해 연하천에 도착 한 후 1박을 하곤 했었다. 지리산 종주 코스 중에서도 낮은 지역에 속하는 연하천(그래도 높이가 1400m을 넘는다)은 물이 풍족한 산장이다.
그래도 이곳은 예전에 풍경이 많이 남아 있어 친숙했다. 저 너른 마당에 온 갖 텐트가 다 있었다. 아 그날이여. 그런데 이곳도 보시는 바와 같이 산장 공사가 한 창이다. 아마도 내년 쯤에는 이 곳도 산장에서 자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지금도 텐트는 칠 수가 없고 비박만 가능하다.
벽소령이다. 1996년 이었나. 후배들 데리고 지리산에 왔다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이곳에서 하산한 기억이 난다. 내려와서 여자 후배들이 집에 전화를 했는데 집에서는 비 때문에 무지 걱정을 했는지 전화기를 붙잡고 하나 같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벽소령 지나 세석 까지 가는 길에 있는, 힘들어 갈증이 심화 될 때 쯤 나타나는 선비샘. 풀 숲에 숨어 있던 이 고마운 샘물이 이렇게 이쁘게 단장되어 길 한 복판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어 좋으나 음 운치는 예전만 못 하네.
세석 가늘 길목에 고사목. 홀로 먼 산 바라기 되어 있네.
드디어 천왕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중간에 조금 높이 솟은 곳이 천왕봉이다. 오른쪽으로 세석 평전도 보이는데 사진기 안에는 다 담지 못했다.
천왕봉까지 7.2 km가 남았다는 이정표. 이런 이제 서서히 체력이 고갈 되어 가고 있다. 무거운 배낭은 발을 근육을 뒤틀어 이제 발도 참을 수 없이 아프다. 현재 시간이 세시 삼십분, 거의 12시간을 걸었다. 으...
드디어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산길에서 만난 동행은 여기서 묵고 내일 새벽에 천왕봉으로 간다고 한다. 그말을 들으니 2km 남짓 남은 장터목까지 더는 못 갈 것 같았다. 그래서 세석에서 짐을 풀었다. 수건에 물 묻혀 온 몸을 닥고 새 옷으로 갈아 입으니 아 기분 너무 좋다. 밥 짓는 코펠에서 나는 냄새도 너무 좋다. 여지껏 아껴 논 참이슬 소주 한 병이 너무 좋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 자꾸 먹히는 시원한 산 약수가 너무 좋다. 일몰의 붉은 빛에 물들어 가는 세석평전이 너무 좋다.
아 지금 이시간이 너무 좋다.
새벽2시에 일어나 짐을 꾸렸다. 머리에 헤드렌턴을 쓰고 배낭을 이고 스틱을 잡고 신발끈 단단히 메고 어두운 새벽길을 나선다. 천왕봉으로 향한다. 새벽 4시 장터목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는다. 산은 온통 안개 투성이다. 일기예보는 비를 예고 하였으나 아직 비는 안 온다. 밥 든든히 먹고 물통 하나 들고 천왕봉으로 향한다. 안경은 안개로 인해 뿌옇다.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안경으로 보이는 시야는 맨 눈으로 보는 것보다 못하다. 이런날은. 가파른 산 길을 걷는데 날이 새는지 주위가 밝아온다. 급한 맘에 발 걸음을 서두른다. 통천문을 지나 산 정상에 오른다. 평평한 공간 가운데 우뚝 솟은 돌 무더기가 보인다. 비석은 저 곳에 있겠다 싶어 다가간다.
우와 사람 참 많다. 줄 서서 비석 옆에서 사진들 찍고 있다. 허나 참 날씨 하고는, 안개와 먹구름으로 인해 사진도 잘 안 찍힌다. 이런.
비석 한 번 쓸어 보고 내려왔다. 왠지 마음이 개운치 못하다. 쨍한 날을 기대하고 갔으나, 천왕봉 일출을 보기위해서는 삼대의 덕을 쌓아야 된다는 말 처럼 지랄같은 날씨만 보다 왔다.
다음을 기대하고 싶으나 이제 또 언제가 되려나 하는 좀 답답한 마음이 든다. 이런.
백무동으로 내려와 버스를 탔다. 서울로 가는 버스 안. 무릎이 좀 많이 아프다. 집에 전화하니 우리 마누라는 터미널로 데리러 온단다. ㅋㅋ 쌩유 희정....
터미널에서 내려 출구를 나와 길가에서 좀 기다리니 하얀색 스포티지가 온다. 내 앞에 선 스포티지 안에서 이쁜 착한 마누라와, 두 딸내미들이 나를 보고 웃으며 떠들어댄다. 아빠, 아빠, 과자 드세요...ㅋㅋ
음, 가족과 내 돌아갈 곳이 있어 저 지리산도 좋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