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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유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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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나도 서거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의 풍파가 이제 어느 정도 지난거 같다.
토요일 아침 인터넷 뉴스로 접한 그의 죽음은 나 또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낸 그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너무 가벼이 생각하는 거 같아 안타깝다. 최진실도 그렇고...

난 자살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김광석도 그랬다.

집권 말, 모든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욕했어도 그저 묵묵히 그의 행동과 판단을 지켜 보았지만
그의 자살은 그에게 한 첫번째이자 마지막 실망이 되었다.

유서를 읽었다.
그의 괴로움이 절절히 묻어나오는 문맥들이 힘있는 단문들에 실려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권력에서 물러나 마지막 남은 청렴성까지 마구 파헤쳐져 남은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절망감.

하지만
죽음 앞에 서면 초연해 지는가.
결심을 하고 난 후 쓴 듯한 문장들은 흡사 해탈한 스님의 생각들 같다.
자연의 한 조각이라.
운명이라....

어찌보면
이렇게 월급 받으며 범인으로 사는 내 자신이 행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높은 곳은 너무 깊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