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박영근-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켤레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 점 없고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긇지 않는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거기 먼저 와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저 눈 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
안치환이 부른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자이다.
첫 노동시인이었고 박노해. 백무산과 같은 노동시인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시가 내게로 왔다 2권에서 김용택 시인은 고은과 박영근 두 사람 빼고는 다 좆도 라고 했다.
이 시는 다른 노동시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쓸쓸한 시골집, 살아온 날들에 대한 단상, 느낌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같은 표현은
여러번 읽게 만든다.
시가 내게로 왔다 라는 5권짜리 시집, ? 시 해설서를 샀다.
김용택 시인이 묶은 것으로
한 시인의 시집 보다는 부담없는 이런 시집들이 좋다.
아무쪽이나 펴 여러번 음미하며 읽기 좋은 시집.
아직 아무리 읽어도 서정주 시인의 참맛을 알지 못하는 난 수양이 더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