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오후

spiiike 2009. 3. 4. 14:33

출가를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유구한 논쟁의 한 부분인 신이 없음을
알량한 자만심으로 결론 내린 뒤
신나게 삶을 살아왔었다. 내 젊은 날

휴일 오후
먹음직 스럽던 두껍게 썰려진 삼겹살 수육에 시원한 막걸리도
딸내미 자랑스럽게 내밀던 학원 1등 성적표도
인터넷 웹 서핑하다 본 육덕 흐벅지게 오른 색녀의 사진도
말짱
허무하다
힘이 없다
권태다

한없이 쪼그라 들어가는 내 존재감은
사십을 앞 둔 나이에 든
또 다른 사춘기일까

성부, 성자, 성신과 해탈은 아니더라도 성찰하신 높으신 스님에게
묻고 싶다는 생각
내 존재가 이리도 작고 허무하게 느껴져 본 적이 없어
휴일 오후
단기적 중증 우울증에 걸려 있던 난
이 지랄 같은 의욕상실감에
교회를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성당에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번뇌, 원죄에서 파생되어 버린 인간의 고통이란 걸까

휴일오후
이도저도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하며
햇볕 붉게 물든 창문가 의자에 늘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