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살아 있던 것들의 순환.

spiiike 2009. 8. 31. 12:00
큰 딸 아이 학교 숙제라며 피티병을 잘라 녹두를 심어 베란다 햇빛 잘 드는 창문 밑에 놓아 두었다.
처음 몇 주, 관심을 갖고 물도 주고 정성도 주며 제법 잎이 컸었는데
항상 그랬지만 두 딸아이 키우며 정신이 없던 집 사람은
예외 없이 녹두도 물 주는 것을 잊어 바짝 마르게 했다.
앙상한 갈색 가지는 창문 모기장 망사 사이로 부는 얕은 바람에도 잎들을 떨구었지만
말라 물기하나 없이 부석거리며 휘청이던 녹두는
길다란, 잎은 아닌것 같은, 녹두가 열린거라고 말하던, 어둔 갈색의 작은 콩깍지 같은 것들 안에
세, 네개의 녹두를 갖고 있었다.

1.5리터 얕은 피티병 안에 담긴 조금의 흙으로, 보이지 않던 공기며, 만져지지 않던 햇볕을 받으며
이 녹두는 처음 시작했을 한 두개의 씨앗의 크기보다 훨씬 더 큰, 넓은, 초록의 가지며 잎들을 만들어 냈으며
집사람의 무관심으로 빈번한 가뭄과도 같은 목마름을 견디며
기어이 처음 시작보다 몇 배나 많은 생명의 씨앗을 잉태하였다.
흙이 있는 곳에 묻으면 또 다시 싹 피우고, 잎 내고, 꽃 피워
처음 시작했던 것 보다 더 많은 씨앗 만들어 낼 조그만 찻잔 종지에 담긴 연약한 녹색의 녹두들.

살아 있는 것들의 순환.

하면, 나도 살아 있는 것일진데, 나의 순환은 무엇일까.
시원한 바람 드는 베란다 앞에 앉아
연한 녹두들 이리 저리 굴리며 생각해 보자니
나의 두 딸들이 나의 생각을 배우며 무럭 무럭 자라고 있고
이렇게 잡스러운 생각들 적혀져 늘어가는 블로그가 있고
나와 관계된 사람들의 기억속에 나와 관련된 생각들이 있는 것이
순환일 거라는 생각,
해 본다.

생각의 순환,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도
이 생각의 순환이 아닐까.
모습은 바뀌어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계속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던 것들의 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