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재생원에서 -김신용-
spiiike
2010. 10. 4. 11:34
글은 어찌되었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씌여지기 때문에
허구인 소설을 쓴다고 하여도 자신의 생각과 생활들이 표현될 수 뿐이 없다.
이희정이가
나랑 비슷한 거 같다고
조선일보에 소개된 시인 한 명을 일러준다.
김신용.
나이는 이제 머리에 백발이 성성한 걸 보니 꽤 드신 듯 한데
여지껏 살아온 시간들이 처절하다 못해 안쓰럽기 까지 했다.
하지만
이 사람도 글에 중독되어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지금은 올 곳이 시 쓰며 살고 있다고 한다.
궁금하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해서 시를 읽어 봤다.
再生院에서
-김신용-
인간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니코스 카잔차키스
자궁 속에서 이미 늙어버린 태아였지.
뿌리가 없어
버려진 몸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는 이곳,
끌려올 때는 물론 우린 수염난 정충들이었지만…… 그 어떤빛도
이 부랑자 수용소, 그 포만된 밤의 배에 제왕절개수술의
메스를 꽂아주지 않았어. 햇살은
칼을 쥔 자의 칼날이었을 뿐, 우리 0.05mm의 꿈이 파고든 난자는
정부미에 쓰레기국 한 그릇, 그리고 칼잠을 자야 하는 시멘트의 방
희망 빡빡 깎인 대가리 들이민, 잿빛의 제복에
온몸 땀 다 짜주면, 父母未生前의 얼굴을 한
원장님은 지그시 아침의 손 내밀며, 왼종일
강제노역으로 짠 밤의 누더기를 펴주었고, 뼈마디마디
피고름 양수 고인 인간개조의 뱃속에 누우면
―우리는 범신론자
시든 풀잎에도, 떠도는 빗방울에도 두 손 모았지.
아무도 몰래…… 작업장에서 훔쳐온 녹슨 의식의 못
시멘트 바닥에 갈고 갈아 열쇠를 만들면, 밤은
어김없이 탈출의 길의 목에 도끼를 내려쳤지.
그러나 목을 잃은 등뼈, 더듬이가 되어
서로의 가슴 속 한줌의 체온, 불빛을 찾아헤매었지.
돋아날 때마다 사육의 가위에 잘려지던 속날개, 잘릴수록
끊임없이 돋아나던 구원에의 외침, 푸른 하늘
아무리 나래 쳐도 깨어보면 그 자리, 철조망의 조롱 속이던 이 끝없는
환상 방황 속에서도, 이 한줌의 알몸 모닥불이 켜지면
별빛마저 철조망으로 우거진 내 가슴 속의 그 무성하던
겨울밤이 지워지고, 쇠창살 갈비뼈만 앙상한 방
그 굵은 체념의 자물통에는 어느새 열쇠가 꽂혀 있었지.
실락원, 그러나 우리들의 陽地로 가는 길이 보였지.
시인의 첫 시집에 실린 시다.
재생원에서의 한때를 묘사한 거 같은데
풍겨지는 느낌이 흡사 기형도를 닮은것도 같은데
약간은 다른
현실의 풍경들과 현실의 생각들이 묘사되어 있고
마지막은 그래도 긍정의 냄새가 나는 단어들로 묘사되어 있다.
민달팽이
-김 신 용-
냇가의 돌 위를
민달팽이가 기어간다
등에 짊어진 집도 없는 저것
보호색을 띤, 갑각의 패각 한 채 없는 저것
타액같은, 미끌미끌한 분비물로 전신을 감싸고
알몸으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햇살의 새끼손가락만 닿아도 말라 바스라질 것 같은
부드럽고 연한 피부 무방비로 열어놓고
산책이라도 즐기고 있는 것인지
냇가의 돌침대 위에서 오수(午睡)라도 즐기고 싶은 것인지
걸으면서도 잠든 것 같은 보폭으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꼭 술통 속을 빠져나온 디오게네스처럼
물과 구름의 운행(運行) 따라 걷는 운수납행처럼
등에 짋어진 집, 세상에 던져주고
입어도 벗은 것 같은 납의(衲衣) 하나로 떠도는
그 우주율의 발걸음로 느리게느리게 걸어간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아내가 냇물에 씻고 있는 배추 입사귀를 알몸 위에 덮어주자
민달팽이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귀찮은 듯 얼른 잎사귀 덮개를 빠져나가 버린다.
치워라, 그늘!
우울함? 하옇튼 앞의 시에서 보이던 어두움이 많이 없어 졌지만
주어진 환경을 온 몸으로 맞서 이겨내려는 시인의 의지는 더 강하게 느껴진다.
햇빛에 곧 말라 죽을거 같은 민달팽이에게
측은함에 배추잎 한 장 덮어 주지만
당당히 치우라고 하는 시인.
치워라, 그늘!
난 이대로 내 갈길 갈거다.
이렇게 민달팽이가 얘기하는 것 같다.
오랜만에
이희정이 덕에
좋은 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