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치해 졌다

spiiike 2009. 3. 25. 21:22

센치해 졌다.

늦은 밤 일을 하다 문득 탐색기에서 발견한

김광석의 mp3 노래 파일 하나

반가운 마음에 듣다 보니

비는 내리고(장마라 당연한 거 아닌가)

썰렁한 사무실에서

수수하게 처량한 음율 따라 회상되던

내 이십대…

 

센치해 졌다.

그리고 귀가하던 길

그 놈의 오징어 데침만 생각이 안 났어도

(지난 일요일 노량진 수산시장에 갔다 왔다)

막걸리 생각은 안 했을 텐데

두어병 사 들고 집으로 들어가

한 껏 신파조인 드라마를 보며

오르는 취기에 내 감흥을 실어

젊은 날 처럼 연분홍 감정에 흥분하고 있다.

 

이런,

강산이 바뀐다 하는 기간동안

쇳밥 섞인 기름에 절어 딱딱하게 마모되어 가는

품의서와 구매서류와 시험데이터만이 존재하는 컴퓨터 모니터

출근, 퇴근, 취침, 출근, 퇴근, 취침, 출근, 퇴근, 취침…….젠장…

술을 먹어 센치해 진 것이 아니라

센치가 그리워 술을 먹었던 것이다. 나는

왜 그리워 할 정도가 되었는가.

나이를 탓하지 말자, 나이를 탓하지 말자.

내 살아가는 이유를 잊고 있었던 무지를 탓하자.

다시 숯돌을 꺼내 무뎌져 있던 내 마음속 펜을 갈아

한 껏 내 마음을 깍아 내자.
저 안이함의 지방덩어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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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시간 밤9시.
둘째 딸 내미는 엄마가 머리 감긴다고 바락 바락 악 쓰며 울고 있고
쏘주 1병에 알딸딸한 난
최용준의 '목요일엔비'라는 노래에 한 참 센치해 있다. ㅋㅋ
기타로 치며 부르려 하는데 하이코드라 어려워 치지는 못하고 인터넷에서 찾은 노래만 따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