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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칼의노래 -김훈-

무료한 일요일 오후,
뒤척이다 책꽃이에서 눈에 띈 칼의노래.

꺼내 첫 페이지를 읽었다 싶었는데
1권을 끝내고 어느샌가 2권을 읽고 있다.

작가는 이순신이 되어
오로지 인간 이순신만을 얘기하고 있다.

많은 소설들이 3인칭 시점으로 써 지지만
그건 3인칭 시점이 쉬워서가 아닐까?

1인칭 시점의 문장은
한 순간이라도 작가가 주인공과의 일체화 됨을 놓친다면
망치게 되는 좀 어려운 기법일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 김훈은
매일 아산 현충사로 가
하루종일 장군의 칼을 보며
자신을 장군에게 이입하며
이 작업을 퍼펙트하게 수행 해 냈다.



소설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고뇌는
아마도 김훈 자신의 고뇌에서 출발한게 아닐까 싶다.
책의 서문이나 상을 수상하고 난뒤의 수상소감이나
관계된 사람들에 대한 모든 연민을 끊으려 하고 있다.
(신문사를 그만둔 시기가 그쯤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추측도 들고...)
그건 책속의 이순신도 마찬가지다.

외로운 싸움.
적은 이유없는 적의를 갖고, 저 바다 건너에서
엄청난 적의의 크기를 갖고
장군을 향해 그 정점의 날카로움을 겨누고 있다.

임금은
장군이 혁혁한 공을 세움에 따라
안도의 한 숨 보다는
전쟁이 끝나고 닥쳐올 장군의 크기에 두려워 한 나머지
장군을 무서워 하며
호시탐탐 죽이려 하고 있다.
벗어 날 수 없는 죽음의 공포.

적도 아군도 자신을 죽이려 하는 상황에서
판옥전함 12척으로 맞이하는
노량의 울음소리 가득한 울둘목에서 맞이하는 300척의 적의 가득한 적선들.

그곳에서
묵묵히
오래된 아궁이 냄새 나는 어머니를 그리워 하며
가족을 지키다 죽은 막내 면의 젖 토한 냄새를 생각하며
장군은 면사첩을 내린 임금의 편에서
근원 모를 적의 가득한 적들을 맞아 죽음의 전투를 치뤄내고 있다.

한껏 나태함으로 치우쳐 있던 나를
날카로운 가시박힌 커단 채찍으로 내리치는 거 같다.
한 줄 한 줄 읽으면 읽을 수록 움찔대게 하는 처절함들.



그리고 기어이
우리가 다 알고 있듯
마지막 전투에서 장군은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져 간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아마도
그때 죽지 않았으면
당파의 정략적인 이해 관계 속에서
모질게 당하다 돌아가셨으리라...

어째
그때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이 하는 짓이란 이리도 똑같을까.

책을 덮고
술 한잔 마시며
22층 우리집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분당 거리가
참 서글프다.

음.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석자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위의 한시는 장군의 검에 새겨져 있는 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