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어디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대학 시절,
접하던 시들의 대부분이 이랬다.
노동, 담배, 삽과 같은 것들, 땀, 고행, 현실에 맞선 상황과 고뇌들.
사랑타령이나 하며, 눈물이, 꽃이, 키스니 하는 가벼운 것들은
그러한 단어들이 나오면 덮어 한켠으로 던져 놓았다.
그 와중, 한편의 시는 참 좋았다.
긴 하루의 노동이 끝나, 저물어 가는 강에 삽을 씻는 화자.
삽은 곧 노동이요, 삷이니
처절한 삶의 하루를 마쳤다는 이야기.
하지만 참 서정적인 단어들과 운율로 그 상황을 얘기하는 시.
내용은 지금 읽어도 어두운 시이나
입 안에 맴도는 연들...
"흐르는 것이 어디 물 뿐이랴
우리도 저와 같아서....."
물가가 굳이 아니더라도 빨간 석양이 지는 하늘을 볼 때면
읇조려 지는 시 구들.
오랜만에 읽어봐도 참 좋다.